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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매년 개최하는 게이 프라이드에는 수천 명의 동성애자들이 참가한다. 사진: Kim Ludbrook/EPA |
지난주 토요일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에는 역대최대 수치인 2만 명이 참가했다.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프라이드 행사이다. 하지만 모든 참가자가 플래시 리퍼블릭(남아프리카의 록밴드)처럼 꽃수레를 타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지는 않았다. 퍼레이드 행렬이 로즈뱅크의 스머츠거리에 다다르자 One in Nine 캠페인에서 나온 스무 명의 흑인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들이 퍼레이드 참가자들 앞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여성들의 몸에서 전쟁을 멈추라"는 문구가 쓰여진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몇몇 마네킹과 함께 길바닥에 드러누었으며, '정의를 위해 죽음을!', '축제를 벌릴 이유 따위 없다' 등의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One in Nine 캠페인 참가자들은 지난 몇년간 성적지향 때문에, 또는 자신의 성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남아프리카 동성애자들을 위해 1 분간 묵념에 들어갔다. 그들이 나눠준 소책자에는 이와 같은 25 명의 피해자 명단이 있었고 '이외에도 보고되지 않은 피해자들은 무수히 많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 동영상에는 이 인권운동가들과 퍼레이드 참가자들 사이의 격한 논쟁이 찍혀 있는데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인권운동가들을 밀치고 욕하며 차로 밀고 지나가겠다고 협박했으며 '너네 록신(동네)로 꺼져라!'고 외쳤다. 결국 경찰은 이 인권운동가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어떻게 봐도 추악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 또한 추악했다. One in Nine 활동가들은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 운영자들이 프라이드 행사의 본래취지에서 벗어나 비정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상업화된 행사를 연다며 비난했고,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 운영자들은 One in Nine 활동가들이 순탄히 진행되던 행사를 습격하여 고의적으로 선동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혼란을 야기시켰고, 이성애자들이 보는 가운데 동성애자 공동체의 수치를 드러내는 심각한 과오를 범했다고 비난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번 충돌은 한동안 존재하던 동성애자 공동체의 균열이 겉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에밀리 크레이븐 씨의 필독 보고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남아프리카 게이-레즈비언 공동체의 인종적 정체성과 인종차별'은 지난 토요일 이벤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잘 뒷받침해 준다. 2010 년에 쓰여진 이 보고서는 오늘날 요하네스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들을 예상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의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은 가장 많이 인식되고 연구가 진행된 사회적 단층이라 할 수 있지만 요하네스 프라이드를 둘러싼 갈등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인종, 젠더, 계급, 성주체성, 성적지향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이 서로 얽히고 섥힌 문제점들은 요하네스 프라이드를 둘러싼 갈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남아프리카처럼 균열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똑같은 동성애자라고 해서 유사한 삶의 방식을 취한다는 보장은 없다. 부유한 백인 게이 남성이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흑인 레즈비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투쟁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성적지향보다 인종과 계급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훨씬 중요한 결정요인이다. 여기서는 동성애자 '공동체'라는 표현 조차 - 비록 결속을 의미하는 정치적 방편으로 쓰일 수 있으나 - 실제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처럼 마땅히 남아프리카의 모든 소수성을 대표해야 하는 행사는 정말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전세계의 게이 퍼레이드는 보통 파티와 정치라는 두 가지 초점을 가지고 있다. 2006 년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 대통령의 강간 재판 때 설립된 One in Nine 캠페인(강간 피해자 아홉 명 중에 오직 한 명만이 경찰에 신고한다는 수치에서 유래한 명칭)은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가 정치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돈 버는 데만 치중하고 겉으로만 번드르한 파티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크레이븐 씨의 보고서(마크 게비서의 연구에 의존했다)는 남아프리카 동성애자들의 인권사를 돌이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예측가능했었다고 한다. 1982 년에 발족한 남아프리카의 첫번째 동성애관련 주요단체인 GASA(Gay Association of South Africa)는 정치색을 배제했으며, 1987 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비판을 거부한 일로 국제 게이-레즈비언 협회로부터 쫓겨난 일도 있다.
사이몬 은콜리 씨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은 GASA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트바터스란트 게이-레즈비언 협회(GLOW)를 설립했다. 정치색이 강한 GLOW는 1990 년 제1회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를 개최했었다. 비난이 두려워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행진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은 물론 당시 정권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시위를 위해 행진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다이크들', '레즈비언과 게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한다! '는 포스터도 있었다. 사이몬 은콜리 씨는 이 이벤트에서 "저는 흑인이자 게이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저는 흑인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받고, 동시에 게이이기 때문에 억압받습니다. 따라서 저는 자유를 위해 투쟁할 때 이 두가지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고 연설했다.
One in Nine은 은콜리 씨의 말을 빌어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도 한 때는 단순한 놀자판이 아닌 정치적 투쟁에 뿌리를 둔 행사였다고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의 취지와 기능이 1900 년 첫 행진을 한 이래로 변화된 것도 사실이다. 안소니 매니언과 숀 드 왈은 저서 '프라이드: 저항과 축제'에서 90 년대 중반에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를 운영했던 폴 스톱스 씨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시 프라이드는 너무 정치적이었고 이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인 게이들은 즐거운 것을 원했고 술에 취하고 싶어했다."
프라이드 관련행사의 명칭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다. 원래 '레즈비언-게이 프라이드 행진'이었던 것이 90 년대말에는 '게이-레즈비언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바뀌면서 레즈비언보다 게이에 중점을 두고 약간이라도 정치적인 뉘앙스가 있는 '행진' 또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뉘앙스가 훨씬 강한 '퍼레이드'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고 크레이븐 씨는 지적한다.
하지만 이 행사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01 년 이 행사는 어마어마한 부채와 줄어드는 참가자수로 위기를 겪게 된다. 이 해 프라이드 행사의 개최장소를 시내에서 로즈뱅크의 주 레이크로 옮기게 된다. 이후 이 행사는 두 해를 제외하고 매년 주 레이크에서 열렸다. 주 레이크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중립적인 지역이었기 때문에 특정한 인종관련 문제가 없었고, 유명한 만남의 장소가 있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과도 연관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Once in Nine과 같은 단체들은 로즈뱅크 교외에 위치한 이 장소를 프라이드 행사가 주로 부유한 백인층을 겨냥하는 증거로 여겼다.
프라이드 행사를 어디서 개최하느냐는 문제는 행사가 어떤 기능을 하느냐는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다. 크레이븐 씨는 "개최장소를 바꿔야 한다는 논란은 항상 행사가 정치성을 띄어야 하느냐 아니면 단순한 축제여야 하느냐는 문제와 함께 대두되어 왔다"며 "전반적으로 동성애에 우호적이고 위협적인 요소가 없는 곳에서 행사를 연다는 것은 논쟁적인 지역을 공략하겠다는 프라이드의 취지와 대조적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동성애자가 다수 거주하는 로즈뱅크에서 행진 참가자들은 이성애자로 전향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는 등 논쟁은 계속된다. 만약 프라이드 행사가 또다른 목적(성적소수자들의 가시화)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주민들이 퀴어에 덜 익숙하고 덜 관용적인 곳에서 개최해야 할 것이다. 물론 보안상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2004 년 프라이드 행사가 일시적으로 시내 지역으로 옮겨졌을 때 한 여성 참가자가 위에서 던진 병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이 목숨은 구한 사건이 있었다.
현재 요하네스버그에는 매년 세 개의 프라이드 행진이 별도로 개최된다. 로즈뱅크에서 열리는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가 있고 그외에 소웨토 프라이드 및 콰 테마에서 열리는 에쿠룰레니 프라이드가 있다. 이 세 행사 중에서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가 참가자수가 가장 많다. 이 행사가 흥미진진한 것은 사실이다. 운영자 타냐 하포드(전 국제 테니스선수)는 데일리 매버릭지와의 인터뷰에서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가 백인들만의 행사라는 주장을 반대하고 경멸한다고 밝혔다. "동영상을 보면 이 행사가 남아프리카의 인종분포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One in Nine의 활동가 퀘질롬소 음반다자요 씨는 데일리 매버릭지에게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 운영위원회(남성 4, 여성 3)는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포드 씨는 운영위원회 일은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며 보수가 없는 활동이라며 한동안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찾았으나 지금까지 단 하나의 NGO 단체 및 개인도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음반다자요 씨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부 검은 사람들이 왜 그 운영회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지부터 알아봐야겠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요하네스버그 프라이드 행사의 원래 취지가 무엇이냐는 것에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하포드 씨에 의하면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퀴어공동체 전체가 매력을 느낄 행사를 주최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운영위원회에는 인권활동가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은 정치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플래카드에 적어서 행진할 수 있는 플랫폼적인 행사를 여는 것입니다. 참가는 하되 방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하포드 씨는 One in Nine이 남아프리카의 동성애자들이 살해당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지지하며 인권 활동가들이 미리 자신들의 취지를 밝혀왔다면 더 힘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플랫폼이 제공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대신 LGBTI 공동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매스컴의 흙탕놀이가 되어 버렸어요."
음반다자요 씨는 만약 백인 게이 남성들이 플래시몹을 기획했다 하더라도 프라이드 행사에서 흑인 레즈비언 시위자들이 겪었던 공격적인 반응을 받았을지 묻는다. 음반다자요 씨에 의하면 그들이 사전에 프라이드측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들의 시위가 상업화된 지금의 프라이드 행사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One in Nine 또한 자신들이 프라이드 행사를 습격했다거나 가로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은 프라이드 행사가 퀴어공동체 전체가 아닌 특정 무리에게만 속한 것이라는 사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음반다자요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라이드는 남아프리카의 동성애자들이 처한 가장 핵심적인 문제, 그들이 겪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축제를 없애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프라이드에 혁명을 재생시켜야 합니다."
One in Nine은 대규모 공개토론회를 열어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우리는 향후추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프라이드 행사를 둘러싼 논쟁은 동성애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아프리카가 가진 보다 광범위한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하며, 특권, 인종, 젠더, 계급, 돈, 폭력과 같은 이슈를 한곳에 섞어놓은 도가니이기도 하다. 만약 LGBTI 공동체들이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그 해결책을 사회 전체와 공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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